기술을 먼저 생각하고 접근하거나 기술을 위한 기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망치를 예로 들어 보자. 주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을 부수거나 벽에 못을 박으려고 망치를 만드는 일은 비교적 쉽다. 용도와 쓰임새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술에서 출발하면 망치의 재료와 역학, 형태와 제작 공정부터 고민하게 된다. 망치 머리를 더 효율적으로 깎는 방법과 손잡이를 더 잘 다듬는 방법은 깊게 파고들 수 있지만, 그 망치가 누구에게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지는 놓치기 쉽다. 생산자에게 팔기 좋은 부품을 만들 수는 있어도, 생산자의 실제 쓰임새를 모른 채 최적화하기는 어렵다.
생산자의 쓰임새에 맞는 망치를 만들려면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생산자가 되어 보거나, 적어도 그들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겪어야 한다. 좋은 생산자가 되는 일도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한다.
기술적 해자는 사용에서 시작된다
기술적으로 최고가 되고 기술적 해자를 가진 인프라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생산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재미있고 멋있어 보이는 목표에 머물 수 있다. 망치 머리를 깎는 중에 불편을 발견했다면 그 쓰임새를 몰라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먼저 파고들어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막연한 목표만으로는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여러 사례를 조사하면서, 딥테크 인프라를 만든 창업가들도 처음부터 인프라만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 먼저 소비자나 다른 생산자에게 제품을 팔고, 직접 생산자가 되어 문제를 만났다. 그 문제의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쌓인 뒤에야 더 깊은 기술과 인프라로 나아갔다. 트랜스포머를 위한 GPU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통찰도 결국 망치 머리의 쇠를 깎는 과정처럼, 실제 사용과 생산에서 발견한 병목에서 나왔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직접 찾아야 하는 것
학교는 망치의 용도보다 재료공학, 헤드의 제작 방법, 손잡이의 구조처럼 부품을 깊이 배우는 곳에 가깝다. 기업가와 자본가는 망치의 쓰임새와 생산 파이프라인을 고민하고, 필요한 부품 지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만으로 실제 가치가 있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기는 어렵다. 용도를 발견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일은 따로 직접 해야 한다.
빠른 제품 탐색으로 돌아가기
나는 하고 싶은 기술을 먼저 앵커로 삼고, 그 기술의 쓰임새를 2주 동안 찾아보려 했다. 기술을 위한 기술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접근은 좋은 아이디어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흑마법과 차력쇼였지만, 차력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필요는 없었다. 더 빠르고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래도 이 탐색은 의미가 있었다. 기술을 먼저 앵커로 삼고 싶은 마음이 왜 잘 작동하지 않는지 직접 확인하고 납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론을 얻고 나니 생각의 프레임워크도 바뀌었다. AI가 발전했으니 어려운 일을 6개월씩 붙들어야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딥테크와 어려운 기술을 하고 싶다면 용도도 모른 채 망치 머리부터 깎을 것이 아니다. 먼저 어떤 문제에 망치가 필요한지 충분히 고민하고, 여러 용도의 망치를 2주나 한 달씩 빠르게 만들어 보자. 사람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들으며 무엇이 실제로 필요한지 확인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
유연하게 생각하자. 더 빠른 방법을 계속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