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장이 약한 편이었다. 새로운 논리적 주장을 들으면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내 직관과 마음보다 상대의 설명을 우선했다. 그러다 보니 남이 말한 방향으로 살면서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더 논리적인 주장이 있으면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내 마음을 따르는 것도 충분히 좋은 판단이고, 나는 거절할 권리가 있다. 거절한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만 하겠다고 미리 한계를 긋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해결책은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 우연히 나타나기도 한다. 대략 짐작한 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다음 행동에 반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 갈 수 있다.
조직의 규칙과 사회의 프레임
나는 조직의 규칙과 도덕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고려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 틀을 깨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많은 기준이 사회와 조직이 만든 프레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스라이팅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분명하게 이해했다. 내 감정은 내가 책임지지만, 나는 기분 나쁠 권리가 있다. 상대가 내 감정을 유도하는 질문과 말을 구분해야 하고, 그럴 때는 나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며 내가 실제로 느낀 대로 행동해야 한다.
이런 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었다. 상대가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방식은 협상이나 설득에서도 나타난다.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사건을 먼저 설명하고, 문제가 생겼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면 된다. 내 책임에 해당하는 일을 다하면 충분하다. 실수는 계속 움직이며 고쳐 나가면 된다.
조르바가 보여 준 자유
최근 비즈카페 독서 모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조르바는 하고 싶은 대로 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도 그가 사회적 프레임에 완전히 갇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고용인이 우위에 있고, 피고용인의 삶이 어려울수록 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조르바는 책임은 다하려고 하면서도 일이 어긋나면 당당하게 말하고, 그다음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자유롭게 산다고 말한다. 자유는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을 감당하면서도 타인이 정한 프레임이 내 판단을 대신하게 두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AI에게 판단을 외주화하지 않기
AI도 비슷한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AI는 긴 답변과 그럴듯한 단어를 조합해 논리적으로 보이는 결론을 내놓는다. AI가 나보다 똑똑하고 지능이 높다는 생각에 매몰되면, 내 기준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대신 책임과 판단을 AI에게 넘기게 된다.
어떤 글을 올리거나 결정을 내린 뒤 “AI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회적 현상은 그 예다. 이것은 감정과 판단의 외주화라고 볼 수 있다. AI의 답변도 나를 움직이는 하나의 프레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AI의 제안은 참고하되,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설명이 없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다.
내가 가져도 되는 권리
예의와 규칙, 도덕은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기준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내 판단을 모두 대신할 수는 없다. 나는 다음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 내가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권리
-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권리와 침묵할 권리
- 거절할 권리와 결정을 뒤집을 권리
- 남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될 권리
- 완벽하지 않고 실수할 권리
- 상대에게 요구하고 협상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을 권리
- 내 주장을 끈질기게 말하고, 때로는 고집을 부릴 권리
기분이 나쁜데도 비겁하게 수동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확인하고 그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고 싶다. 나를 믿어도 된다. 결과는 내가 책임지면 된다.
《죄책감 없이 거절하는 용기》는 거절하는 법만 알려 준 책이 아니었다. 내가 자유롭게 살고, 내 삶의 주체로 결정하는 길을 보여 준 책이었다. 많은 도움이 됐다.